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잠자는 1조원 넘는 돈이 골칫거리로 전락했습니다. 고객들은 숨은 돈을 찾지 못하고 금융사는 추가 비용이 지출되니 서로가 부담이되고 있어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단편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내 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등에 일정 기간 이상 거래가 없는 휴면계좌는 지난 1월 기준 5447만좌에 달하고, 계좌 개설이 가능한 연령대를 고려하면 인구 1명당 금융계좌 1.22개를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은행 휴면계좌의 1848억원을 포함해 1조3911억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사에서는 사용되지도 않는 계좌를 관리하는 데 각종 이자를 비롯해 전산화 작업 등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며, 계좌 주인인 사용자의 손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체 시장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돌아야 할 돈이 고인 채 머물러 있으니 효용이 떨어진다. 사람 몸의 혈전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관련 대책이 실행된 후 20개월 동안 휴면 금융재산 1조2450억원이 환급됐고, 특히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실시한 은행계좌 통합관리서비스‘어카운트인포’는 시행된 지 두 달 만에 265만명이 200억여원을 찾아가는 등 흥행몰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휴면 금융재산 규모는 아직도 1조3911억원에 달하는데 그 이유는 은행권 정도를 제외하면 숨은 재산을 찾아갈 방법이 아직도 복잡한 탓이기도 합니다.
금융사의 입장도 답답한게 쓰이지 않는 돈을 관리하는 법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서 이전까지 금융사들은 2007년 설립된‘휴면예금재단’(현 미소금융재단)에 휴면예금 일부를 맡기고 유지비용을 그나마 절감해 왔지만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은행권은 2014년부터 휴면예금을 출연할 수 없게 됐습니다. 휴면예금재단에 낼 수 있는 ‘소멸시효 완성 채권’에서 은행·저축은행 예금을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는 관련법이 비교적 잘 정비돼 있어 일례로 미국은 1950년대 중반부터 주마다 미청구자산법을 제정, 주 정부가 금융사와 기업으로부터 고객들의 미청구 자산을 이양받아 관리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 법에 따르면 금융사와 기업은 주 정부에 휴면 금융자산을 맡긴 원 소유주의 최종 확인된 주소지에 우편을 보내 이를 알려야 한다. 주 정부는 신문 게재와 조회 시스템 운영, 주소식별 등으로 끊임없이 휴면재산의 주인을 찾을 의무가 있고, 원 소유주는 이관된 자산을 연방 정부와 주 정부가 함께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찾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비슷한 시도를 시작했지만 걸음마 수준이다. 금감원이 최근 금융 포털 ‘파인에‘잠자는 내 돈 찾기’서비스를 개설했으나 지금까지는 관련 웹 사이트로 이어지는 각 링크를 한 데 모아놓은 정도입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가 고객의 변경된 주소를 몰라 휴면 금융재산을 안내하지 못하는 경우를 감안해 올 하반기부터 행정자치부로부터 최근 주소 정보를 받아 안내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